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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사의 일상

[완도 공보의] 전남 완도로 가다

by SkyblueHJ 2023. 4. 27.

공중보건의사: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게 하기 위하여 병역법 제34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서 공중보건의사에 편입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로서 보건복지부장관한테서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할 것을 명령받은 자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보건의료시설 및 농어촌지역의 복지시설에서 종사한다

공중보건의사로 배정되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하게 되면 병역을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사로 36개월간 복무하게 된다. (인턴하기 전에 입대하는 경우엔 현역으로 갈 수 있다). 군의관은 군인 신분으로서 군부대 내에서의 의료 행위를 담당하고, 공중보건의는 계약직 국가공무원으로서 의료취약지역의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한다. (한의대와 치대도 포함)

의대, 한의대, 치대 졸업자들 중 의무사관후보생들은 임의로 군의관, 공보의로 직책이 나뉘게 된다. 군인 신분인 군의관보다는 대체적으로 민간인 신분인 공보의가 비교적 더 자유롭기 때문에 보통 공보의를 선호하고, 본인도 배치 결과를 애타 기다리던 중 드디어 2월 24일 문자로 결과 통보를 받게 된다.

공중보건의 당첨이었다 ㅎㅎ

두근두근 시/도 배치

하지만 행복은 잠시.. 신규 공보의에게는 근무 지역 배치라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근무 기간이 3년이기 때문에 공보의에게 근무지역 배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근무지역 배치는 크게 두 과정으로 나뉘는데, 시/도 배치와 그 후 해당 시/도 내에서 세부지역 배치로 나뉜다.

특히, 근무지역 추첨 과정이 순전히 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선 시/도 배치는 1~5지망 온라인 지원 후 추첨으로 배치가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수도권에서 가까운 경기도가 제일 인기가 많고, 그 뒤로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등으로 이어지며, 서울이나 부산에서 거리가 제일 멀고 섬이 많은 전라도는 선호도가 제일 낮은 편이다. 본인도 본가가 서울인 관계로 충청북도를 1지망으로 희망하여 지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전라남도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시/도를 지원할 때 5지망까지 적어내기는 하지만, 전라남도 이외의 지역은 거의 모두 경쟁률이 1을 넘기 때문에 1순위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전라남도 배치라고 보면 된다. 경쟁률이 높은 편에 속하는 충청북도에 썼기에 예상을 못한 결과는 아니지만, 막상 배치를 받으니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암담해할 시간도 없이, 이틀 후에 전남도청에서 세부지역 추첨을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 전남의 세부지역을 파악하여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세부지역 추첨

세부지역 추첨 방법은 시/도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한 곳에 모두 모여서 제비뽑기로 순위를 뽑은 후 원하는 지역을 뽑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같은 시/도 내에 있는 지역이라도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부지역 추첨도 (운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이 추첨에서 내가 몇 순위를 뽑을지 모르기 때문에, 각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최대한 나만의 지역 순위를 만들어놔야 한다. 결국 결과가 나온 다음날 밤을 새다시피 하여 나름의 기준(서울까지의 거리 및 시간, 주변 인프라, 주변 기차역 여부 등등)으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순위를 매겼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우리나라(특히 전남)의 지리를 섭렵하게 되는데, 전남에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 270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육지와 가까운 편에 속하는 섬이 대부분이지만, 가거도, 홍도와 같이 배타고 4시간이 넘는 섬에도 공보의가 배정이 된다. 이러한 지역까지 모두 고려하여 순위를 정하다보니 먼저 공보의를 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 목포항에서 배 타고 4시간 반 가량을 항해해야한다.
 
마찬가지로 배로 4시간 반 가량 걸리는 백령도. 예전에 백령도의 위치를 지도에서 처음 봤을 때 내 눈을 의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망의 4월 14일, 결전의 장소인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우선 전라남도에 배정된 사람들은 99%가 1지망을 떨어져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운 편이다. 이전에 한 사람이 두 개의 제비를 뽑아 추첨을 재시행했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로 녹화하며 한 사람이 뽑을 때마다 그 결과를 나머지 인원에게 알려준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제비를 뽑는 순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던 것 같다. 의대에서는 원하는 과에서 3~4년 동안 수련받기 위해 6년 동안 열심히 달려오는 삶을 살았는데, 이곳에선 3년이라는 시간의 인생이 약 1초의 가벼운 손짓으로 결정난다는 것이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차례가 되어 제비를 뽑았고, 인턴의 48명 중 33번을 뽑았다. 역시 나는 금손은 아니었다. 안좋은 숫자를 뽑아도 결국 내 손 말고 탓할 곳이 없는 것이다. 한 자리 숫자를 뽑고 환호하는 분도 계셨고, 거의 꼴찌를 뽑고 울먹거리는 분도 계셨다. 숫자 1이 호명될 땐 축하와 부러움의 박수가 터졌고 40대의 숫자가 호명될 땐 안타까움에서 나온 탄식이 들렸다. 33도 좋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최대한 상황에 맞는 최선의 지역을 골라야했다. 앞에서 차례차례 희망했던 지역들이 지워지고, 내 순서가 왔을 때 별다른 고민의 여지가 없이 중간 정도 순위로 고려했던 완도를 고르게 되었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공보의는 섬에서 1년 근무하면 경기도나 충청도 등의 육지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꽤 선호되는 편이고, 어찌됐든 완도를 고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던 것 같다.

완도군 금일보건지소를 선택하다

완도에는 인턴의가 9명이 뽑혔는데, 완도에도 섬이 여러 곳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추첨을 하여 섬을 골라야 한다. 즉 총 3번의 추첨을 경험하는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공보의 지역 배치 추첨만큼 운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있을까..? 아무튼 다행히 완도 내 추첨에선 드디어 숫자 1을 뽑아 가장 선호하던 평일도의 금일보건지소를 선택하였다. 섬 자체의 인프라도 평균 이상이지만, 육지에서 배로 15분만 타면 된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앞 2번의 추첨에선 영 힘을 못쓰다가고 막판에 잘 뽑으니 그래도 기분이 꽤 나아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언제 섬생활을 해보겠나, 최대한 즐겨보고 경험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경험을 하든 본인이 좋게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경험인 것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피곤했다. 전날 밤을 새다시피 한 것도 있고, 추첨 장소에서도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던 것 같다. 그래도 돌아올 때는 갈 때만큼 심란하지는 않았다. 전남도청까지 오고 가는 길은 부모님과 함께 했는데, 힘이 되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히려 걱정을 덮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부풀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