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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사의 일상

[완도 공보의]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

by SkyblueHJ 2023. 12. 28.

공중보건의사가 근무하는 기관은 보건소, 보건지소, 중앙기관, 민간병원 등으로 나뉘는데, 현재 내가 공중보건의사로 일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보건지소이다. 보건지소는 보건소의 업무 수행을 하는 곳으로, 읍/면마다 1개소씩 설치되어 일차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이다.

그리고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담당 지역과도 거리가 있는 의료취약지역에는 보건진료소가 진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의사가 반드시 배치되어야 하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와는 달리, 보건진료소에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보건진료소장으로서 배치된다. 이러한 형태로 보건지소와 관할 보건진료소가 협업하여 해당 의료취약지역의 일차보건의료를 담당하게 된다.

 

 

금일읍에는 내가 일하고 있는 금일보건지소와 3곳의 보건진료소(사동리, 소랑도, 충도)가 일차보건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보건진료소와 보건사업에서 협업하는 상황도 자주 있고, 보건진료소 전담공무원(보건진료소장)분들 중 예전에 금일보건지소에 근무하셨던 분도 계셔서 보건지소 회식 등을 할 때 보건진료소장님들과도 함께 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충도보건진료소가 있는 충도는 또다른 섬인 관계로 충도에 계신 분은 거의 뵙지 못했지만, 사동과 소랑 보건진료소에 계신 분들과는 식사도 함께 하며 자주 뵐 수 있었다.

 

 

보건지소 family

 

종종 보건진료소장님들께서 내원하신 환자분들에 대해 질문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직접 환자를 진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응급/비응급 여부를 판단하여 아는 범위 내에서 조언을 드리거나, 그래도 애매한 경우에는 섬에 있는 다른 의원에 내원할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는 방식이다. 보통은 혈압, 혈당 조절에 대한 내용이거나 식이 조절에 대한 상담 등 만성질환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의뢰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케이스가 있었다.

 

 

때는 11월 초중반, 공보의로 근무 후 첫 휴가를 내고 잡은 일본 여행을 위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한 보건진료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평소에 내원한 환자분들께 청진 등 기본 진찰을 매번 열심히 하시면서 이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시는데, 기침약 추가 처방을 위해 내원한 한 환자분께 흉부 청진을 하던 중 심장쪽 부위에서 삑삑거리는 양상의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다. '삑삑'이라는 단어를 듣고 처음 떠올린 것은 rhonchi로, 기관지폐질환에서 생길 수 있는 삑삑거리는 양상의 lung sound이다. 그런데 자세히 더 여쭤보니 부위도 심장 부위에서 유난히 잘 들리고, 호흡보다는 심장 박동에 따라 규칙적으로 들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최근에 호흡곤란으로 의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분이라고 했다. 발열 등 기타 신체 증상은 없다고 대답해주셨다. 생각보다 심각할 상황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때쯤엔 나도 졸음이 완전히 달아나 있었다.

호흡곤란이라는 증상과 심잡음으로 추정되는 청진 소리로 추측해봤을 때 아무래도 심장판막질환 등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직접 청진 소리를 들어보지는 못하니 유튜브 심잡음 영상을 보건진료소장님께서 참고하실 수 있게 공유해드렸다. 그리고 심장판막질환 등 심장의 구조적 문제의 여부에 대한 검사를 상급의료기관에서 받아야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우선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갔다오고나서 이 일에 대해서는 잊고 있다가 2주 후쯤 보건진료소장님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진료소장님께서 육지에 계신 보호자분께 잘 전달하여 대학병원 심장내과로 인계해주셨고, 검사 결과 개흉술이 필요한 상황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분께서 고령인 관계로 결국 개흉술 대신 혈관중재시술을 받고 퇴원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본가로 복귀하여 잘 회복하고 계신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처음에 통화할 때 심장 이상에 대한 가능성을 떠올리긴 했지만, 실제로 개흉술이 필요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나중에 보건진료소장님께서 이번 케이스를 의료취약지 의료지원 미담사례로 올려주셨다. 평소에 편하게 환자 케이스에 대해 문답할 수 있는 라포가 응급일 수 있는 상황에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내가 드렸던 조언이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했고, 청진을 정확하게 하시고 이상 소견을 놓치지 않은 보건진료소장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의학적 지식을 깊이 있게 숙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흉부 청진과 같은 기본적인 진료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침약을 위해 내원한 상기 환자와 같은 상황에서 이상 소견을 놓치게 될 것이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이야 이전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은 말이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마주하고 나니 정말로 실감이 되면서 피부에 와닿았다. 이번에 깨달은 점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도 의료행위를 하면서 작은 이상소견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