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작년 여름, 한 증권사의 해외주식 수수료 혜택 광고를 보고 해외 주식 계좌를 개설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도 국내 주식을 매매하긴 했지만, 기업에 대한 조사와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뚜렷한 기준 없이 매수와 매도를 반복했기에 이를 ‘투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미국의 산업과 기업에 대해 조사하고 다양한 투자 지표를 공부하면서 점점 투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은 어떤 마인드와 기준으로 기업을 바라보고 트레이드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월가에서 헤지펀드 애널리스트와 트레이더로 활동했던 한 인물의 경험을 다룬 책, 『디 앤서』를 알게 되었고 고민 없이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월스트리트를 전쟁터와 같다고 묘사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장소인 만큼 냉혹하고 치열한 경쟁이 가득한 장소인 것이다. 영화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월스트리트 트레이더의 멋진 모습의 이면에는 24시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숫자로 나타나는 본인의 수익률로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고통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경쟁환경과 스트레스 때문에 어렵게 입사했음에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정말 흔하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에서 첫 직장을 경영컨설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맥킨지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기업에 입사했음에도,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 월가의 금융가로 향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도 비교적 정해진 길을 걸어오며 직업으로서 안정성을 추구해 온 나로서는 저자의 결정이 정말 인상 깊었다.
특히나 저자가 금융업계에 발을 들인 시기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태로 미국 증시가 역사적인 폭락을 겪은 때였다. S&P 500 지수는 1년 동안 50% 이상 폭락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헤지펀드와 금융기업이 청산당하고 셀수없는 월스트리트 펀드매니저들이 직업을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원하는 자리를 포기하고 이러한 불안정하고 경쟁이 치열한 업계로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는 사회 초년생의 행동에서 저자의 결단력을 엿볼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비효율성을 가정하고 극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즉 주식의 가격이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지나치게 과열되어 본연의 가치를 월등히 뛰어넘기도 하고 지나친 공포로 패닉셀이 일어나 과도하게 폭락하기도 한다는 점을 활용해 매매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된 구간에서 매수하고 고평가된 구간에서 공매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하나의 포지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공식과 가치평가 모델을 활용하여 적정 주가 가치를 계산할 뿐만 아니라 발품을 팔며 해당 기업과 기업이 속한 산업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수백 장에 달하는 공시자료와 사업계획서까지 꼼꼼히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후 해당 포지션에 반박하는 임원진들의 공격을 이겨내야 비로소 해당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평소에 헤지펀드의 펀드매니저들은 기술적인 기법을 많이 활용하여 스윙이나 스캘핑과 같은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매매를 하는 비율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 자신도 종종 단기 수익을 노리며 기술적인 지표를 참고하여 매매하고는 했었다. 또한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 위한 밸류에이션 분석을 할 때에도 PER, PBR 등 몇몇 기본 지표에만 의존하며 적정 주가를 예측해 왔었다. 하지만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기본적 가치 분석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내용을 읽으며 스스로의 투자 행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러한 가치투자를 하는 경우 흔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는데 바로 ‘밸류트랩’이다. 이 부분은 특히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도 연결되어 더 공감되었던 내용이다. 주식의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음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있는 상황을 뜻하는데, 저평가 여부만 보고 매수했다가 물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전문투자자들도 자주 겪는 함정이며 특히 자신의 포지션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자기 확신편향으로 인해 포지션 정리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나도 미국 주식을 공부하던 중 한 회사의 PER이 과거 몇 년간의 PER 평균과 동종업계의 PER 평균 수치보다 크게 저평가된 상태인 것을 보고 매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업계에서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컨센서스 상으로도 향후 몇 년간 수익과 매출이 상승 전망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주가는 횡보하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하락을 거듭하였고, 막연하게 ‘언젠가는 시장이 기업의 주가 가치를 인정하고 복구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버티다가 결국 손절한 경험이 있다. 자기 확신편향에 빠져 내가 참고한 가치분석 지표를 맹신하여 특허 만료 예정인 주력 상품으로 인한 매출 성장 불확실성,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매출 구조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우려 등을 간과하고 대응이 늦었던 것이다. 저평가된 대기업이라고 해서 밸류트랩의 예외는 아니라는 점과 자기 확신편향으로 인한 포지션 대응 실패의 기억을 다시 한번 책으로 읽으며 되새길 수 있었고, 매수 후에도 끊임없이 해당 포지션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하는 습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내용은 ‘지적 정직함’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떠한 정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합리적인 의심과 검증을 통해 완전한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으로, 월가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아무리 높은 직급의 사람이라도, 그 의견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오히려 의무로 여겨진다. 저자도 상위 직급 펀드매니저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실패할 뻔한 투자를 철회시킨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위계질서 속에서도 계급과 무관하게 반대의 의견을 낼 수 있고 이것이 의무로 규정되는 문화가 월스트리트가 세계 최고의 금융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아닐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반박의 여지가 있더라도 윗사람의 의견에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곳이 많다. 의사결정 시 직급을 벗어나 논리에 근거하여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잘 장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지금 이 주식을 매수하면 오를까?” 또는 “시장이 언제쯤 폭락할까?” 와 같이 시장을 감히 예측하려는 질문을 종종 하고는 한다. 더 나아가 주가나 시장을 예측하는 주변의 말에 흔들려 잘못된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시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예측이 적중해서 수익이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트레이더들은 시장을 예측하는 것이 아닌, 시장의 상승과 하락 속에서 각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여 장기적으로도 꾸준히 수익을 내는 방식을 추구한다. 주식 시장에서는 가끔 홈런을 터뜨리는 타자가 아닌 꾸준히 안타를 생산해내고 출루에 성공하는 타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전문 트레이더의 관점에서 업계에서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개인투자자들도 올바른 투자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지침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분할매매의 중요성, 자기객관화의 필요성, 레버리지의 위험성, 포지션 규모 조정과 트레이딩 원칙의 중요성 등 투자에 중요한 여러 원칙을 되새기며 내 투자 습관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최근 해외 증시에서 유독 한국인의 레버리지 상품 비중이 높다는 뉴스가 뜨거운 감자였던 적이 있다. 모 투자 앱에서도 상위 검색량 순위의 절반 이상을 레버리지 또는 인버스 상품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 또한 기업의 가치는 무시하고 단기 수익을 좇아 레버리지나 인버스 상품에 손을 댄 경험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투자 습관을 객관적으로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문투자자처럼 상세한 가치 분석과 조사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투자자로서 이 책을 접한다면 주식 투자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원칙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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