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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독후감] <성채> A.J. 크로닌

by SkyblueHJ 2023. 4. 18.

<성채>는 내가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 읽어보려고 구매했던 책이었다. 펼쳐보지 못하고 7년을 묵혀두다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후 공중보건의사를 앞두고 훈련소에 입소할 때 가져가서 드디어 펼쳐보게 된 책이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보다는, 의사로서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를 앞둔 시점에서 훨씬 몰입되고 공감할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줄거리

 

이 책은 의대를 갓 졸업한 앤드류 맨슨이라는 청년이 의료현실을 마주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레는 의사로서의 첫 근무를 남웨일스의 작은 광산촌인 드라이네피에서 대진의 신분으로 일을 시작한 앤드류는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의료계의 부조리를 다양하게 마주하게 된다. 대진의의 임금을 떼어먹으려고 하거나, 효과가 없는데도 관습화된 사고방식과 오래된 지식에 근거하여 공공연히 시행되는 치료, 지지부진한 행정체계 등의 문제를 맞닥뜨린다. 그러나 앤드류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거의 사산아에 가까운 출생아를 소생시키고, 양심적인 의사 데니와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 해결하는 등 열정적이고 양심적인 진료를 이어나간다. 그 와중 크리스틴이라는 순수하고 강인한 내면을 가진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급여 문제로 갈등을 겪고 더 좋은 조건으로 비교적 큰 동네인 어벨라로우로 이직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옮겨간 새로운 동네도 부조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수입의 일정 부분을 최고참 의사에게 내야 했으며, 허위진단서에 대한 압박도 받게 된다. 이에 맞서면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밤새 공부를 하며 영국 의학회 회원에 합격하고, 무너져가는 갱내에서 수술을 해내는 등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낸다. 또한 호흡기의학에 관심이 많던 앤드류는 탄광 종사자와 진폐증, 폐결핵 등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다. 이러한 굳센 모습도 다른 의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늦은 행정적 처리로 다리의 수리가 늦어짐으로 인한 아내의 부상 및 유산,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양심적 진료에 앙심을 품은 사람들과의 마찰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게 되어 런던으로 옮겨 개원하게 된다.

런던은 앤드류의 인생에서 가장 분수령이 되는 무대가 된다. 개원 후 상류층 고객과 접하며 물질주의에 빠지게 되면서, 재산은 풍족해짐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탐욕에 눈이 멀어 기존에 멸시했던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를 일삼는 등 내면은 빈곤해지게 된다. 또한 그로 인해 평범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하던 아내와는 소원해지게 된다. 그칠 줄 모르던 그의 탐욕은 의료사고로 앤드류의 환자가 불행하게 죽는 사건을 겪은 후 멈추게 되고, 원래 추구하던 신조에 따라 의료행위를 하게 된다. 그 후 면허를 잃을 뻔하는 등의 위기에서도 본인의 신조에 떳떳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법정에서 맞서고 승리하게 된다.


 

주인공인 앤드류 맨슨은 의사이자 작가인 A.J. 크로닌의 자전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앤드류와 같이 시골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저자가 의사 생활을 하며 겪었던 경험을 녹여낸 내용인 만큼, 시대와 나라는 다르더라도 나에게도 해당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의사로서의 첫 근무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인턴 근무를 했었고, 1년이라는 짧은 근무 기간에도 불구하고 의사로서 보람찼던 순간도 많았지만 고치기 어렵다고 느낀 관습화된 문제들도 마주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턴을 마치고 의료취약지역에서 공중보건의사로서의 근무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앤드류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주의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이는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앤드류 맨슨처럼 큰 뜻을 품은 이상주의자로서 의학에 발을 들였다가, 의료계나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나 한계에 부딪히며 신조가 꺾이고 물질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앞으로도 본격적으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앤드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문제를 마주하며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향후 이러한 상황에서 <성채>를 떠올리며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하는 바람이다.

국시를 마치고 의사면허를 처음 발급받았을 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잠을 못 이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공중보건의사로 실제 현장에서의 근무를 앞둔 시점에서 여전히 설레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근무하며 자신의 신념과 방향성을 확립하고 추후 전공과목 선택, 전공의 수련 및 진료를 할 때 평생 간직하여 흔들림이 없는 의사가 되고 싶다.